많이 들어봤겠지만 대한민국 청소년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이다. 무엇이 피어나는 파란 새싹들을 태워버리는가?
위키백과에 의하면, '성적, 진학 문제'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부도 안 하는 어른들이 '공부는 살아가는데 뿌리'라고 떠들어봤자 들리지도 않는다. 학교가 감옥이고 학생이 죄수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의미 없는 공부를 강요당하는 것은, '못이 박힌 거대한 몽둥이'에 덜덜 떨며 '도살장'에 끌려가는 개처럼 죽임 당하는 것과 같다.
꿈과 적성을 찾고 자신만의 목적과 의미를 쫓는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목적도 이유도 없는 공부를 강요당한다. "공부 안해서 뭐 먹고살래. 공부 안 하면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한다."등 학생 입장에선 정말 x 같은 소리를 해댄다. 그만하면 다행일까, 조언해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자기 마음대로 내 미래를 결정하려 한다. "의사를 해라. 변호사를 해라. 공무원이 안정적이다. 이과 전화기과를 가라." 어른에게는 '듣기 싫다, 좀 꺼져달라'고 말할 수도 없다.
공부의 이유를 가르치는 '진로' 수업시간에는, 4차산업혁명 영상을 1년 내내 틀어주고 감상만 말하라고 한다. 이 얼마나 웃긴 상황인가. 희망이 서려야 할 진로교실에선 똑같은 내용의 지루한 '회색' 영상만이 기다리고 있다.
가끔씩 하는 진로검사의 결과는 내 성향을 말해준다. 이건 어느 정도 유익하다고 볼 수 있으나, 워크넷이나 커리어넷에 들어가면 혼자서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수업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우리 자신이 원하는게 무엇인지 깨닫고, 이를 이룰 방법을 배웠는가? 진짜 중요한 자본주의와 돈, 삶과 죽음의 의미를 '제대로' 배웠는가?"
공부를 시키는것까지는 괜찮다고 치자. 어쨌든 공부로 인해 지금 내 생각의 재료가 조금은 생겼다고 인정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질문을 잃었다. 나는 질문을 잃었다. 중학생 때까지만 하더라도, 과학시간에 족히 10번이 넘는 질문을 다 받아주시는 선생님이 계셨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자마자 공부량은 3배가 넘어갔고, 질문하면 교육과정에 있는 거나 똑바로 하라고 욕을 먹었다. '왜?'라는 말은 호기심이 없어진 과학시간엔 암묵적으로 금지어였다. 이런 행태가 미국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 기회를 줘도 아무도 손을 안 드는, 거지 같은 상황을 만들어냈다.
이러니 학생이 '공부'라는 단어를 좋아할 수 있겠는가? 평생 배움을 실천할 수 있겠는가? 들으면 온갖 강요와 짜증 나는 느낌만 든다. 그러나 남탓만 하고 있다면, 바뀌는 건 없다.
우리가 쓰는 언어는 그 언어에대한 우리의 느낌을 반영한다. 예를들어 '바퀴벌레'라고 하면 끔찍하고 더러운 느낌이 든다. 그 대신 '강아지, 고양이'는 보통 귀여운 느낌이 든다. 둘 다 생물이지만 어찌 이리 다른가? 우리가 쓰는 '공부'라는 말은 강아지나 고양이보다 '바퀴벌레'를 닮아있다.
그래서 나는 '공부' 대신 '능동적 배움'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배움은 나를 좋은쪽으로 변화시키지만, 학교에서 했던 숨 막히는 공부의 느낌을 가지긴 싫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생 배우고 익히며 살아간다. 바깥으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고, 자기만의 관점으로 해석해서, '노하우'를 얻는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겪는 과정이다. 누구는 그 노하우로 좋은 대학에 합격하고, 돈을 더 잘 벌고,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처럼 알게 모르게 '능동적 배움'은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능동적 배움'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가 사용하는 세가지 단어를 살펴보자.
'재능'이란 무엇일까? "개인이 타고난 능력과 훈련에 의하여 획득된 능력을 아울러 이른다."라고 네이버 국어사전에 나온다. 우리는 '재능'이라는 말을 타고난 것, 보통사람은 도달할 수 없을 사람에게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재능의 뜻은 '훈련에 의하여 획득된 능력'을 아울러 이른다고 한다.
'교육과 학습'은 어떻게 다른말일까? 교육은 교육자들의 책임이지만, 학습은 우리 모두가 직면한 것이다. 특히 대한민국 학생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공부는 왜 해야 하는 걸까? (대한민국 학생이라면) 좋은 대학 가서 취업하기 등의 '죽은 목적'을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다.
여기서,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능동적 배움'을 추구해야한다. 능동적 배움이란 전혀 수동적이지 않다.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야 하는 일 속에서 그 이유를 찾고, 그 일이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닌지 생각하고 판단한다. 결국엔 남 눈치나 보는 삶이 아니라 내게 진정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된다. 진정 '나의 노하우'를 얻게 된다.
예를 들면 '대학'은 고등학생들에게 '무조건 가야 하는 곳' 혹은 '안 가면 인생 망하는 곳'이다. 이를 '능동적 배움의 관점'으로 달리 해석해보자. 내 '목적'은 첫 번째로 마케터가 되는 것이고, 두 번째로 마케팅을 기반으로 나만의 콘텐츠 사업을 구축하는 것이다. 목적에 따른 '도구'인 대학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치를 제공하기 위한 스킬을 배우는 곳'이 된다. 이런 관점으로는 대학에 내 모든것을 걸지 않을 수 있다. 대학은 마케터가 되기 위한 수많은 방법 중에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년에 '이상한 마케팅'에 입사할 것이다. 마케팅을 배울 기회를 얻어낼 것이다. 이를 위해서, 나는 서울권 대학의 기숙사에 살고 장학금으로 다닐 필요가 있다. 이와 동시에, 블로그로 철학을 쌓아가고 마케터의 문장을 연마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나는 책읽기와 글쓰기와 수능 공부하기를 시스템화 시키고, 나의 목적에 한걸음 더 다가가겠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난 잘될 것이다. 플랜 B를 세우고, 실패하더라도 무너지진 않게 멘탈을 케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돈을 두려워하지만 나는 돈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돈은 자율성을 추구하는 도구일 뿐이고, 신용의 결과이며 내가 만들어낸 가치의 결과이다. 그릇이 된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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